[2022 수능개편안 연속기고] 수학과학 교육 외면...우리 미래는 지속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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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23. 오전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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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수능시험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에 대하여※ 편집자 주. 정부는 현재 중3 학생이 치를 2022년 수능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 비중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수학 시험은 문·이과를 통합해 치르고, 과학은 사회와 합쳐 2과목만 골라 응시하는 방식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쉬운 공부에 매달리다 정작 미래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대계 수학·과학 교육에 대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 문제는 정치 문제보다 더 정치적이다.”

정치 문제는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나, 우리의 교육은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을 뿐만 아니라 교육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스스로 교육제도를 경험하였고, 대개 현재 학생이거나 그 가족이다. 그리고 학력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성공 요소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중·고등학교에 적용되기 시작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방향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의 육성을 위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이다.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및 초연결의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송진웅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장)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29일 대입정책포럼을 통해 교육부는 2022학년도 수능시험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안)을 발표하였다. 이 안에 따르면, 국어·수학·영어·한국사는 필수과목이며, 이 중 국어와 수학의 경우 필수선택 1과목씩이 추가로 포함된다. 여기서 이공계 교육의 기초인 ‘기하와 벡터’가 수학의 필수선택 과목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우려가 매우 크다.

수학도 문제이지만, 과학탐구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부 안에 따르면, 2015 교육과정의 핵심과목인 ‘통합과학’은 ('통합사회’와 함께) 시험과목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으며, 4개의 과학1 과목 (물리학1, 화학1, 생명과학1, 지구과학1)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럼 이번 수능 과학탐구 과목구조(안)은 왜 심각한가?

첫째, 이공계 교육의 핵심 기초인 과학2 과목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고, 우리나라 대학 정원의 절반은 이공계열이다. 그리고 지식의 위계관계가 중요한 이공계열의 특성상, 과학2 수준의 이해는 대학교육의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2018학년도 수능에서 물리학2 응시생은 약 2800명, 화학2 응시생은 약 3300명에 불과했다.

미국은 어떠한가. 대학 선이수 과목으로서 우리의 과학2보다 높은 수준에 해당하는 AP시험에서, 2017년 물리학은 27만5000명, 화학은 15만9000명이 응시하였다. 이는 물리2 응시생의 약 100배, 화학2 응시생의 약 50배에 해당한다. 다른 선진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보다 월등히 많은 응시생들이 과학2 이상 수준의 시험에 매년 응시하고 있다. 이제 2022학년도 수능부터는 그나마 과학2 응시생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적자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과학2 과목을 수능에서 선택할 수는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등학교에서 이에 대한 교육이 최소한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과학탐구 내 과목편중 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다. 과학탐구에서 두 과목을 선택했던 2018학년도 수능에서 물리1 응시생은 지구과학1의 약 1/3, 물리2는 지구과학2의 약 1/4에 불과했다. 이제 과학1 과목 중에서도 단 하나의 과목만 선택하게 된다면, 아랍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표준점수가 높게 나올 수 있는 과목에 대한 편중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수는 극도로 줄어들 것이며, 대학 이공계 교육의 실질적 기초는 붕괴된다. 이를 언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

셋째, 통합과학이 제외됨으로써 융합교육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2015 교육과정에서 융합교육을 위해 특별히 도입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통합적 지식과 역량으로 구성되는데, 그러한 융합교육이 현실적으로 잘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다른 수능과목을 위해 형식적인 수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다형이라는 수능시험의 평가방식 때문에 통합과학의 본래 취지가 실현되기 쉽지 않겠지만, 수능시험에서 제외되었을 때 최소한의 교육도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수능시험의 서술형 평가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운 수능시험 개편안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과학2 과목들이 선택에서 완전히 제외됨으로써 이공계 교육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며, 과학1에서 한 과목만 선택함으로써 이미 심각한 과목편중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통합과학은 수능에서 제외되어 2015 교육과정이 추구했던 융합교육 또한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입제도의 변경과 관련된 극심한 사회적 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교육과 대학입시의 문제점들은 단순히 수능시험만을 개선한다고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어떤 수능개편안이 도입되더라도 거기에 따르는 어느 정도의 부작용과 단점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 만큼 더욱 신중하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에 대한 불만을 주로 토로해왔던 대학의 책임도 매우 크다. 대학은 더 이상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모집 단위별로 필요한 과학 교과 이수과목과 수능시험 선택과목을 지정하는 등 대학에서 우수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대학별 권한을 확보하는 등 노력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이공계 기초교육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고 실시해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 관계자들은 국가사회의 미래와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국가의 미래가 이들 책임 있는 어른들의 손에 달려 있다.

☞ 과기단체 <2020 수능 바로세우기> 공동서명은 30일까지 온라인(https://moaform.com/q/113kjg)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송진웅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과학교육학회장) jwso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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