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고2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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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21. 오전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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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능인고 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2000년쯤에 생겨난 신어 중에는 '중2병'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 사춘기가 되면 자아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면서 세상을 다 아는 듯이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춘기 특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보통 그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어서 그런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이 병의 특징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치유가 된다는 것이며, 치유가 된 후에는 병을 앓던 시절이 매우 부끄러운 기억, 즉 흑역사로 남는 후유증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계에는 보고가 되지 않았지만 '고2병'이라는 새로운 병이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다들 자기가 서울대나 의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성적표를 받고 난 후에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고2병의 발병 원인은 바로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 중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고3 가서 수능 한 방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주사제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 수능 전형은 인원이 적은 데다 재수생 비율이 워낙 높은지라 희망이 되지 못한다. 1학년 때 평균 4등급을 받았다면 죽어라 공부해서 등급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이나 지방 국립대학을 가기는 어렵다.

고2병의 중요한 특징은 '안고수비'(眼高手卑)로 요약할 수 있다. 눈은 높지만 실력도, 현실적인 여건도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각성해서 실력을 키우면 좋으련만,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게임이나 유튜브 같은 엉뚱한 것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모님과의 갈등도 많아진다. 부모님으로부터 혼이 났으면 각성해서 올바른 길로 가면 좋으련만, 혼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또 엉뚱한 일을 한다.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학교에 오면 자는 경우가 많다.

고3이 되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고2병은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 2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도 시험 하나를 망치는 일이 발생하면 고3이 되어서 고2병이 발생한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있는 3년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를 늘리는 안이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 줄 세우기, 교육과정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정시를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성적 향상자 전형과 같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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