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형인가 싶었는데 문과형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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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16. 오후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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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덕후의 공부법



수학 문제를 풀어 답을 맞혔을 때나, 과학 실험에서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와 며칠을 고민하다 그 원인을 알아냈을 때처럼 저는 정확한 답이 나오는 공부를 좋아했습니다. 당연히 이과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했죠. 문학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생각한다거나 영어 단어를 외우는 등 문과형 공부에는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 봉사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이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생 때 지역 다문화가정 지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를 하는 등 기본적인 봉사를 했습니다. 우연히 저보다 조금 어린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공부를 도와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친구들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된장찌개를 손꼽고, 한국말도 잘하는 보통의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조금 이국적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종종 차별받거나 심하게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다문화가정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친구들이 자신은 같은 한국인인데 왜 차별받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진심으로 궁금해졌습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해 한국 청소년들의 인식은 어떠하고, 어떤 이유로 한국 청소년들이 차별을 하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등 마음속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매년 학교에서 탐구대회를 할 때마다 과학 관련 주제만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다문화가정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아봐야겠다고 말이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본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 선생님께 여쭤보고 도서관에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며 나름대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설문조사’와 ‘인터뷰’ 등도 처음 해봤습니다. 그렇게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 청소년의 인식―군포시 청소년 대상’이라는 탐구보고서가 완성됐고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 등도 진행하게 됐습니다.

여름방학 봉사활동 경험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셈인데 탐구보고서까지 쓰는 과정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보람과 흥미를 느꼈습니다. 덕분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최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계열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 진로를 찾는 것 등이 내신과 수능에 못지않은 일종의 공부 과업으로 여겨집니다. 계열 선택, 희망학과 선택에 시간이 드는 것을 방황이나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계열 선택은 사실 학업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올해 고교 1학년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공부합니다. 한데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수강할 과목 선택부터 대학입시 과정에서 희망학과 선택까지 내용상으로 문·이과 가운데 하나를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합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놓고 문과 또는 이과로 이분화해 선택하는 게 융합과 통섭 시대에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어떤 유형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려 하기보다 내가 과연 진정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뭔지 ‘탐색’부터 먼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도 단순히 이공계 분야와 맞는다고 생각했다가 우연한 경험으로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와서 전공 학과와 희망 진로는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 진짜 푹 빠져드는 분야가 뭔지를 너무 늦게 찾다 보면 방황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자유학년제 등을 통해 진로를 고민해볼 기회가 생겼죠. 학교를 통한 진로 탐색 기회뿐 아니라 스스로 의의를 두고 하는 봉사활동, 취미활동, 동아리활동 등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이세영(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 전공, 한국청소년학술대회 KSCY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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