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서 기하 빼고,문이과 통합? 수학·과학 의미 다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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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27. 오후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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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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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에서 열린 2022수능개편안 좌담회.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윤신영 기자 제공


최근 교육부가 지금 중3 학생이 치를 2022년 수능 시험 개편안을 내놨다. 수학과 과학 비중이 대폭 축소된 개편안에 과학기술계는 한 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수능 수학 가형의 출제범위에서 기하가 빠지고 문이과 시험이 통합된다. 또 물리와 화학, 생물 그리고 지구과학 등 과학탐구 과목별 심화과정인 과학Ⅱ가 없어진다. 문이과학생 모두 기초과정인 과학탐구Ⅰ 과목과 사회탐구 과목 중 각각 하나씩을 선택해 시험을 보도록 조정됐다.

과기계는 이번 개편안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수학과 과학 교육을 포기하는 시대착오적 변화라는 입장이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13개 과학기술계 단체가 25일 유례없이 뜻을 모아 기자간담회까지 개최한 이유다.



하지만 학습부담 완화와 문이과 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지도 강하다. 학부모들은 학생이 과도한 입시 경쟁과 학업 부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미래 사회에 대비한 역량을 갖출 교육 환경을 바라는 마음이 공존할 터다. 실제로 동아사이언스가 좌담회 전 연 독자 의견 사이트에는 수학과학 강화를 주장하는 과기계에 대한 비판과 수학과학을 축소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공존했다. 복잡한 실타래다.

동아사이언스는 지난달 28일 교육부가 내놓은 ‘202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과목구조 및 출제범위 개편안’을 두고 과기계의 목소리를 담고, 더 나은 교육 방향을 고민하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수학과 과학, 의학 등을 가르쳐 온 대학과 고교의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어봤다.

◆ 참석자

이향숙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장(이화여대 교수)
이효종 서문여고 과학교사
윤상준 양명고 수학교사
정성훈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한양대 교수)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고려대 교수)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하현준 기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 (한국외대 교수)
사회=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

사회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수능 개편안이 나왔다. 거의 모든 과학 관련 단체는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왜 그런가.

이향숙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장=새 수능 개편안은 미래지향적 교육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기하가 빠지고 문이과 통합시험을 보는 것은 융합형 인재가 아니라 문과로 치우치는 인재를 길러낼 뿐이다. 짧게는 수년에서 10~20년 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수학과 과학이 기본 소양이 될 것인데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교육제도다.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 수학과 과학 교육을 약화시키는 곳은 없다. 과기계가 우리 교육 정책을 재진단하고 방향을 다시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향숙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장


● 수능 바꾼다고 학습 부담 줄어들까

사회=전반적으로 수학과 과학 시험을 축소한다는 방향인데, 이를 통해 교육부가 말하는 것처럼 학습부담 경감과 사교육비 절감을 이룰 수 있나.

이효종 서문여고 화학교사=수학과 과학은 단순 암기가 아닌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과목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공부한다고 될까’라는 부담을 느끼고, 수학포기자도 늘어나고 있다. 학습 부담을 줄이자는 교육부의 취지는 동의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시험에서 배제하는 이번 개편안이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효종 서문여고 화학교사


이번 개편안에 따르면 문과 학생들이 과학탐구에서 1과목을 필수적으로 선택해야한다. 이과 학생이 사회탐구 과목을 하나 추가하는 것과 문과 학생이 과학탐구를 추가하는 건 다른 얘기다. 인문계 학생에게 과탐은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고, 또다른 사교육 시장이 될 것이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도 제한된다. 지금도 교실에서 수능 과목 수업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Ⅱ를 수능에서 선택 못 하면, 고등학교 3학년 과학Ⅱ 수업 시간엔 과학Ⅰ 복습만 할 것이다. 결국 이번 개편안도 본래 목적을 이루기 어려우리라 본다.

윤상준 양명고 수학교사=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수업 내용이 많아서 힘든 건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실 평가할 때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힘들어 하지 않는가? 수능 수학이 30문제 중 27개 모두 맞아야 하고 3개 문제로 변별하는 식인데, 이런 입시 경쟁이 학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윤상준 양명고 수학교사


수학이나 과학 학습량에 부담을 느끼지만, 단순히 양을 줄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입시 경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과목을 점수로만 바라봐야하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각 과목에 흥미를 느낄만한 시간이 없이 점수에만 매달리는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풀릴 문제다.

사회=수학 과학 학습에 대한 접근 방식이나 평가 방식을 논의해야지, 단순히 특정 과목의 학습량을 조절해선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 생각의 근육 키우는 공부 필요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고등학교 때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장 과목에 ‘턱걸이’가 있었다. 팔을 쭉 편 상태에서 반동없이 올라와야 한 개다. 나는 한 개도 못 하다가 근육을 키우고 기초체력을 올린 뒤 성공했다. 보람이 있었다. 부담을 느끼던 것에 도전하고 부딪치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턱걸이 횟수를 셀 때, 감독관이 팔 힘이 아니라 반동을 이용해 올라가는 '배치기'를 묵인한다면, 학생들은 배치기만 할 것이다. 지금 평가 방식이 배치기와 같다. 요령만 배워서 점수를 주는 거다. 물론 모든 사람이 수학이나 과학 전문가의 길을 걷진 않는다. 하지만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과 해결력을 기르는 필수 학문이다. 그런데도 학습량을 이유로 계속 양을 줄이더니 이번엔 공간에 대한 기초지식인 기하를 삭제해 버렸다. 기본적인 사고력을 제한하는 조치다.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동감한다. 이번 개편안 반대에 의학계가 참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학을 배우지만 실제 임상에서 환자는 다 다르다. 의사는 각 환자의 상태와 환경 등 여러 조건을 따져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임상 추론'을 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 방식을 배우지 못 한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면 환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사회= 학생들이 기본기를 쌓지 못 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그런데 유학 가면 처음에 한국학생들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다 외국 학생들에게 나중에 역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성훈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특히 이과에서 국내외 학생의 대학 이후 수준 역전 현상은 계속 지적된 문제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경험 있다. 처음 유학 가면 한국 학생이 수학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배운 것도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역전돼 있다. 이건 수업방식 때문이다.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문제를 직접 수학적으로 파악해 기술하고, 해결하는 사고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했는가의 문제다.

정성훈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


● 대학 교육 현장의 어려움

사회=수학과 과학은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부 뿐 아니라 실제 학생과 학부모도 부담을 느끼는게 현실이다. 물리와 화학 등을 고등학교에서 안 배웠다면 대학에서 가르치면 되지 않나

하현준 기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현재 고등학교 이과 학생 중 물리Ⅱ나 화학Ⅱ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약 3000명 수준으로, 생물Ⅱ나 지구과학Ⅱ의 3분의 1 수준이다. 문이과 통합되면 모든 학생들이 어려운 물리나 화학 대신 점수받기 쉬운 생물과 지구과학으로 몰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에서 물리Ⅰ과 화학Ⅰ조차 듣지 않아 기본기가 전혀 없는 신입생을 맞아야 한다.

하현준 기초과학회협의체 회장


정성훈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덜 배우고 오면 물론 대학에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 내가 재직하는 한양대 공대는 수학 Ⅱ를 공부하지 않은 신입생을 위해 입학 전 수업을 통해 이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온 학생을 보면 수학Ⅱ를 공부한 학생이 더 잘하기 위해 참석한다. 수학Ⅰ만 들었던 학생은 극히 적다.

대학에 와서 고등학교 때 느끼지 못한 학문의 뜻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미 수학에서 마음이 떠난 학생들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 수준을 나눠서 가르치면 되지 않냐는 분들이 많다. 대학 여건상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눠 개강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면 결국 잘하는 학생들이 손해보는 구조가 될 것이다.

사회= 현재 개편안대로 학교에서 더 적은 내용을 내실있게 가르쳐 보는 것은 어떤가

이향숙= 내실있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맞다. 우리 교육의 오랜 고민이다. 우리 교과서는 요점만 있고 스토리가 없다. 예를 들면 수학과 과학 관련 인물 이야기나, 실제 적용사례 등을 적절히 교과서에 포함해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는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수소양이 될 학문, 즉 가장 내실있게 다져야 할 과목인 기하나 과학 심화과정이 아예 삭제됐다는 점이다.

● 수학, 과학 필요성 설득해야

사회=과기계의 입장과 실제 학부모나 학생이 받아들이는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이를 설득하고 함께 논의하는 데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같다.

윤상준=학부모나, 학생뿐 아니라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동료교사도 가끔 ‘수학을 왜 배워요?’라고 묻는다. 수학을 학문이나, 사고력 추리력 향상의 학문으로 보지 않는 우리 중고교 현장에선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잡기 어렵다. 단순 문제풀기에 그치고, 낙오하는 학생은 부담으로만 받아들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성훈=공업수학 왜 배웠나, 미적분 왜 배웠나? 이런 얘기 많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방식, 방법이 그런 공부를 통해 습득된 것이다. 유학할 때 프로그래밍 공부가 가장 어려웠다. 그들 머리에서 나온 논리 전개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런 사고 체계를 수학, 과학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황준묵=수학자들 사이에서도 "저런 거 왜 하지?"라고 하는 분야들이 있다. 독일에선 그런 연구 하는 수학 박사들이 기업에 고액 연봉을 받아 스카웃되곤 한다. 연구한 내용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긴 이론체계를 논리적으로 짜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사는 것이다. 반면 지도교수 연구에 껴서 논문에 이름 올리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같은 수학박사라도 기업이 원하지 않는다.

이효종=학생들이 저는 체육하니까, 뮤지컬 하니까 화학 안할래요 그런 말을 한다. 저는 그래서 뮤지컬하는 학생에게 '알칼리 송'을 만들어오라고도 해 봤다. 요점은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경험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걸 알면 수학, 과학 왜 하냐는 질문은 줄어들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가 그림도 좋아한다면, 쓰고 싶은 글을 그림으로 그려보라 한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주는 분위기를 이끌면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경험한다.

하현준=지난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최근 미세먼지 등 생활 속에 과학과 연관된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해졌다. 꼭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일반 국민이 기본적인 과학과 수학 지식을 알면, 설명문을 읽고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수 있다. 그랬다면 가습기 사건등의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다.

우리가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필요한 기술들에 대한 기본 지식라는 점 외에도, 앞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벌어질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수학과 과학이 도움이 된다. 이를 장려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과 입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김진호 기자 tw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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