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대전에서 열린 국민토론회에서 4개 개편 시나리오를 두고 각 개편안을 만든 단체 간에 설전이 벌어졌는데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인 듯하다. 정시 합격률과 평가방식, 즉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 택일 문제다. 일단 토론회에서 나온 각 단체의 주장은 일리 있어 보인다. "학생부종합(학종) 평가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만큼 정시 전형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 "수능은 서울 강남 지역 등 '금수저'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수능 상대평가는 단순 암기학습을 부추길 따름"이라는 등의 의견은 각각 나름의 근거가 있어 설득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토론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공격'에 치중하느라 상대의 의견을 논박하는 '수비'는 등한히 하는 듯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토론회 풍경은 그렇다. 예를 들면 학종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건설적 제안이 있었는지, 뒤늦게 철이 든 학생이 고3 때 분투할 경우 '역전'의 기회가 있는지,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사교육 열풍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등 궁금한 것 투성이다. 이럴 때는 눈앞의 현안에 매몰돼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멀리 떨어져, 크게 생각의 전환을 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본다. 그러자니 경북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이경숙 박사의 '시험국민의 탄생(푸른역사)' 중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네덜란드에서는 "선발은 필요에 의한 교육지원이며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여겨 의대나 법대 학생들마저 추첨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기본 점수만 되면 점수대별로 추첨 비율이 다르긴 하지만 나머지 성적은 상관없이 인기학과 학생도 추첨으로 선발한단다. 이 책은 북유럽의 교육복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부모가 부자든 가난하든, 점수가 높든 낮든 누구에게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성적과 학업 능력이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우리 사회가 한 번 생각해볼 지적이 아닐까.
이를테면 '시험 없는 대학입학'을 제안하는 건데 파격을 넘어 혁명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 박사의 말마따나 우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입시를 없앤 경험도 있고, 평준화와 국립대학 연합체제를 시행해도 될 만큼 대학들의 역량도 커졌고, 무엇보다 미래 사회는 주입식 문제풀이 전문가보다 다양한 역량을 가진 이들이 더 필요한 마당에 과연 정시 비율이나 평가방식 같은 '절차'에 목을 매야 할까. 오히려 "모든 이들이 희망할 때, 희망하는 만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게 정책 당국자든 대학 측이든 학부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부와 사회적 지위가 사실상 '세습'되는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계층 상승 통로인 교육에, 입시에 목숨을 거는 듯한 자세는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고교 시절 수능성적이나 결과를 중시하는 수행평가가 일류 대학에 진학과 좋은 직장을 좌우하는 평생의 훈장 또는 멍에가 되는 세상이 과연 바람직한가. 우리 모두 멈춰 생각해볼 때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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