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 논술형 입시 개혁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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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미래 사회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자기 관리, 지식정보 처리역량, 창의적 사고역량, 심미적 감성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핵심 역량을 적용한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과 함께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입시제도 개선 요구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2022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올해 8월 말까지 발표해야 하는데, 이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의 입시제도 개선을 예로 들며 객관식 시험 폐지, 대입 시험에서 논술형 시험 도입 등 급격한 변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가 살펴본 일본 입시 개혁의 실상은 이와 다르며 일본 교육당국 역시 입시 개혁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교 교육, 대학 교육,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대학 입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고대접속개혁’을 중앙교육위원회 답신(2014년 12월22일)에서 제언했다. 이 답신에서 2020학년도부터 대학입학센터시험(우리나라의 수능시험에 해당)을 폐지하고 새로운 시험을 도입한다고 했다.

이 발표 후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객관식 시험인 센터시험은 완전히 폐지되고 전면적으로 논술형 시험을 도입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새로운 시험인 ‘대학입학 공통테스트’는 실제로 객관식 문항이 폐지되는 것도 아니고 출제 과목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아니며 논술형 시험이 전면 도입되는 것도 아니다. 지식·기능 위주의 문항에서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중심으로 평가 내용이 바뀌고, 객관식 문항은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국어와 수학에서만 논술형이 아닌 조건부 서술형 문항이 각각 3개씩 출제될 예정이다.

작년 11월 입시센터가 주관한 예비 시행에서 국어는 25자, 50자, 120자로 기술하는 조건부 서술형 문항이 출제되었다.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평가한다는 시행의 목적을 고려할 때 논술형 평가가 적합하나, 국가 단위의 대규모 평가에서 단기간에 50만~60만명의 답안을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채점하기는 쉽지 않아 조건부 서술형 문항을 출제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1월 예비 시행에서는 국어 7만명, 수학 6만명의 서술형 답안 채점에 민간의 전문 채점 업체를 활용했다. 약 1000명의 채점위원이 동원되어 2주일에 걸쳐 채점했다고 한다. 본 시험에서 50만명을 채점하려면 단순히 계산해도 7000명 이상의 채점위원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기술하는 서술형 문항으로 하지 않고 조건부 서술형 문항으로 하는 것은 채점위원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채점을 하게 되면 그룹별로 채점의 차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입학 공통테스트의 두 번째 큰 변화는 영어에서 말하기, 쓰기가 포함된 언어 4기능 시험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2020학년도 시험부터 4년간은 대학입학 공통테스트의 영어 과목을, 언어 4기능을 측정하는 민간 시험과 함께 대입에 반영하며, 그 이후에는 민간 시험으로 전면 전환할 예정이다. 일본의 대학에서 언어 4기능을 포함한 민간 시험을 이용하는 경우 일본영어검정협회에서 실시하는 영검과 TEAP의 시험을 90% 이상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영어 교육을 위해서는 말하기와 쓰기를 포함한 언어 4기능을 측정하는 시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입 시험을 개혁하려 하는 일본에서도 서술형 문항의 도입에 있어 전면적인 논술형이 아닌 조건부 서술형을 도입하려 하며, 이와 관련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몇 차례의 예비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입시 개혁을 기존 입시제도의 전면적 변화, 논술형 시험의 전면적 실시 등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입시정책을 바꾸어가고자 한다면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미래 사회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해 논술형 시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공정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대단위 채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조건부 서술형 문항부터 단계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수능에서 서술형, 논술형 시험 도입 역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평가 맥락 및 학교 현장 여건을 고려해, 채점의 공정성 및 신뢰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등 국내 교육 현실에 맞춘 연구를 거쳐 순차적으로 도입 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용백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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