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 들고와”… 검정고시생 울리는 대입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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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여전히 수시전형서 차별


“양식 부적절” 서류 퇴짜 놓거나 생기부 없으면 아예 최저점 주기도
헌재 결정 후 지원은 가능해졌지만 정보 없고 서류 준비도 까다로워
“제도권 밖 학생들은 기회 빼앗겨”


박하람(18)양은 올해 수시모집 때 지원하고 싶었던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박양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해당 대학은 입시요강에서 ‘학교생활기록부가 없는 자에게는 최저 점수를 준다’고 명시했다. 최저점(100점)은 최고점(1000점)과 10배 차이가 나서 생기부가 없는 검정고시생은 합격 가능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대학의 다른 전형은 재외국민전형과 외국인전형뿐이었다. 박양은 26일 “이런 대학들을 다 거르고 나면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며 “같은 반 친구들도 수시모집에서 차별이 심하다고 여러 번 울었다”고 털어놨다.

수시전형에서 제도권 밖 학생들이 소외감을 호소하고 있다. 대학들이 검정고시생은 준비할 수 없는 서류를 의무 제출토록 한 뒤 최저점을 주거나 대체 서류를 제대로 공지하지 않고 퇴짜를 놓는 식으로 일반 학생과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시전형에서 검정고시생의 지원을 제한하는 건 이미 지난해 위헌 결정이 났지만 실상은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제도권 밖 학생들 사이에서는 “입시 비중이 80%에 가까운 수시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검정고시생들은 “위헌결정 이후 대학들이 형식적으로만 문을 열어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검정고시생들에게 제출 서류의 양식 등 기본 사항을 고지하지 않고 책임을 학생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한수연(18)양 역시 최근 서울시내 사립대 수시에 지원했다가 대학의 무책임으로 전형을 중단했다. 해당 대학은 생기부가 없는 학생들에게 대체서식을 제출토록 했지만 어떤 서류를 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한양이 입학처에 문의했을 때는 “알아서 하라”는 답을 받았다. 동아리 활동 등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하자 입학처는 “이런 서류는 받아줄 수 없으니 대안학교 생기부를 가져오라”고 했다. 한양은 “이런 곳에서는 생기부를 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서류 제출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학생 채수진(18)양도 “학생들이 직접 입학처에 전화해 서류 양식이나 매수 제한을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며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정보라도 제공해 달라는 건데 그조차 안 된다는 게 가장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했다. 헌재 위헌 결정 이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검정고시생도 최소한 한 가지 전형에는 지원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대학에 내려 보냈다. 지난 8월에는 2021학년도 대입기본사항에 검정고시 출신 차별 금지를 명문화했다.

하지만 검정고시생에게 최저점을 주는 등의 실질적 차별은 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입시 평가는 대학의 자율권이라는 이유에서다. 대교협 관계자는 “평가권은 대학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최저점을 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며 “관리감독기관인 교육부가 지적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교육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헌법소원에 참여했던 대안학교 교사 정승민(41)씨는 “헌재 결정 이후 검정고시생들은 자신들도 정당하게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로서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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